COMMU (2)

녹음에는 차가운 기색이 서려 있었다. 제때 개사초(改莎草: 무덤의 떼를 갈아 입히다)하지 않아 무성하게 자란 들풀이 떨어지는 태양이 버거운 양 잎사귀를 늘어뜨렸다. 그러다가 별안간, 큼직하게 흔들렸다. 무덤 사이에서 새가 튀어 올랐다. 작은 강아지만치 커다란 까마귀였다. 까마귀는 그대로 마을로 허겁지겁 날아들었다. 그러고는 어느 집 마당에 주저앉는다.

마당에서 콩을 까고 있던 눈 밑이 퀭한 여자 하나가 마귀에게 돌팔매질했다. 이를 악다물고 말하는 목소리가 살벌했다.

“저놈의 까마귀.”

어린아이 주먹만 한 돌에 얻어맞을 뻔한 것에 놀랄 만한 데도 까마귀는 미동도 없이 시선을 여자가 품에 끌어안은 소쿠리에게 고정했다. 까악. 까마귀가 부리를 열어 길게 울음했다. 여자가 소쿠리를 더욱 깊숙이 끌어안았다. 소쿠리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는 낡은 헝겊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까악. 까마귀가 재차 울었다. 안색이 파리하게 질린 여자가 소쿠리를 품에 부둥키고 서둘러 집안으로 몸을 피했다. 까마귀가 부리를 또 열려다가 말고 솟구치듯 날아올랐다. 뒤에서 삿갓을 깊이 눌러 쓴 괴한 둘이 나타난 까닭이었다. 그들이 눌러쓴 삿갓 아래로 천이 나부꼈다.

집안의 그늘에 숨어 여자는 희번득거리는 눈으로 남자들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육척의 장신들이었다. 허리춤으로 찬 검과 등에 진 괴나리봇짐 외에는 짐이 단출했다. 하나는 삿갓 아래 늘어뜨린 천마저 새까맸고, 다른 하나는 햇빛에 반사된 모습에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얗다. 손은 천으로 동여맸고 긴 옷은 발목까지 덮으니 겉으로 노출되는 피부는 조금도 없었다. 자칫 음침할 수 있는 차림이나 자세는 곧고 어깨가 반듯하니 분명 검을 정식으로 배운 무인들, 그것도 신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보아하니 영검을 불러오고 축귀를 일삼는 천군들이다.

작금에 와서 천군이란 크게 두 부류였다. 하나는 백성을 도와 곳곳에 출몰하는 요마귀괴를 무찌르는 자들이요, 다른 하나는 요마귀괴보다 악독하게 백성을 핍박하는 자들이었다. 일단 두 부류로 분류를 하긴 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두 부류가 같은 존재일 때가 잦았다. 골칫덩어리를 해결해줄 테니 천만금을 내놓으라고 떵떵거리거나, 제 무위를 믿고 일반 민초의 목숨을 쉽게 앗아가는 이들이었다. 

어쩐지 볼 때마다 등골이 서느런 것이 필시 검에 피를 묻힌 적이 있는 살인자들이로구나. 그것이 여자의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도처에 까마귀가 있는 세상이 아니던가. 저들이 지금은 온화하게 걷고 있다곤 하나 언제 돌변하여 제 목을 치려고 덤빌지 모른다. 여자는 집 안의 그늘로 더욱 몸을 웅크렸다.

“실례합니다.”

그런 생각에 골몰하여 하도 긴장한 나머지 장정 중 하나가 그리 창문을 넘어 말을 걸어왔을 때, 여자는 깜짝 놀라 소쿠리를 되레 던져 버릴 뻔했다. 하얀 옷을 입은 사내였다. 목소리가 청아했다. 남자의 차림에서 개인을 식별해 낼 수 있는 것은 그 정도뿐이다, 목소리.

“무슨 일이십니까.”

“이 근처에 묵을 만한 객잔이 있습니까.”

여자는 남자들이 썩 꺼지기를 바라며 검지로 마을 서편을 가리켰다. 삿갓을 고쳐 쓴 백삼의 사내가 고개를 꾸벅여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러나 바로 걸음을 옮기지 않고 제자리에서 꾸물거렸다. 헛기침 두 어 번 하더니 익숙하지 않은 듯 어색한 말투로 물음을 던졌다.

“……이 마을은 요즘 어떻습니까.”

“어떻다니요?”

무슨 물음인 줄 뻔히 알면서도 여자가 짐짓 딴청을 피웠다. 어떻기는 뭐, 박복한 삶이다. 비옥하지도 않은 지력을 잡초만 빨아먹는 곳. 농사를 열심히 지어봤자 벼에는 물리는 세금이 어마어마하니 차라리 산에서 산나물을 캐어다가 먹는 것이 나은 처지였다. 그러나 남자들이 조정에서 출두한 암행어사일 리가 없다. 여자는 사또와 향리에 대한 불만을 서둘러 입에 올리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남자들의 물음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을 작정이다. 이러다 곤란한 일에 휩쓸릴 수 있으므로.

“기이한 일이 일어나거나, 요마귀괴가 나타나거나 하지는 않습니까?”

“그런 일은 없습니다.”

여자는 몸을 사선으로 비스듬히 돌렸다. 그때,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창 안으로 손을 넣어 여자의 어깨를 세게 낚아챘다. 그 무례함과 아귀힘에 여자는 몸을 반사적으로 내떨었다.

“아이 이름은 지어주었나?”

여자는 퀭한 눈을 두 어 번 끔뻑거린다. 그러면서도 여자는 흰옷의 사내와 검은 옷의 사내가 서로 옷을 바꿔 입어도 저 독특한 목소리 때문에 금방 구분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검은 옷 사내의 목소리는 아주 기괴해서, 낮았으나 손톱으로 쇠를 긁는 듯 날카롭고 삐죽한 구석이 있었다. 듣기 싫게 긁는 목소리였다. 일전에 목이라도 크게 다친 것일까, 여자는 문득 남자의 목을 뚫는 세검을 상상했다.

“아이 이름은 지어주었느냐고.”

“아직……. 삼칠일이 안 지나서…….”

“서둘러 지어라.”

당신이 무엇인데 간섭이오? 성격대로 쏘아붙이는 대신에 여자는 그러마, 하고 고개를 조아렸다. 무어라 더 말을 붙일 것 같았던 남자는 혀만 차고 여자가 가리켰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남자들이 떠나자마자 그 자리에 다시 까마귀가 온다. 이번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까악, 길게 우는 소리는 자연스러운 새 울음소리라기보다는 독에 오른 선전포고와 더 닮았다. 여자는 소쿠리를 놓지 않고 재차 이놈의 까마귀, 욕설하며 돌 던졌다.



“소쿠리에 있는 것, 여자의 아기였다.” 

학오虐烏는 조금 여자의 집이 멀어지자마자 백의의 남자, 무명無名에게 그리 읊었다. 무명은 대꾸하지 않았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굳은살이 울퉁불퉁하고 마디가 붉은 손가락이 금을 탄주하듯이 검집을 건드렸다. 학오가 그 장단을 잠시간 듣고 있다가 조급하게 입을 뗐다.

“서둘러 이름을 지어주지 않으면…….”

“무언가 태어나겠지요. 어미의 한이 보통이 아닌 듯했습니다.”

“이곳에는 역병이나 전쟁의 냄새가 없다. 분명히 사연이 있어.”

“학오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어린아이들은 쉽게도 죽습니다. 까마귀들이 부를 이름이 없어도 죽습니다. 인간들이 삼칠일을 지키는 까닭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의 형상을 한 괴이가 많은 것이다.”

학오는 설명이라기보다는 뇌까리고 탄식하는 듯한 어조였다. 무명은 삿갓을 고쳐 쓰며 고개를 돌렸다. 마치 천을 뚫고 그 너머를 보는 듯한 태도다. 바람이 불자 삿갓 아래로 붉은 입술만 슬며시 드러났다. 사내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요염하게 붉었다.

“그래서 지체하실 겁니까? 강림께서는 하루빨리 이 물건을 가져다 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만은…….”

무명이 메고 있는 봇짐을 슬쩍 가리켰다. 강림, 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학오가 신음을 안으로 삼켰다. 그가 손으로 삿갓 밑으로 늘어진 천을 헤집으며 짐짓 딴청을 피웠다.

“사흘을 쉬지 않고 서쪽으로 달려왔다. 쉬어가는 김에 우환 하나를 해결하고 가도 좋지 않겠느냐.”

“앞으로 이런 마을을 수십, 수백은 맞닥뜨리게 될 겁니다. 그때마다 멈추어 서시게요?”

학오가 발을 세게 굴렀다. 땅에서 먼지가 풀썩 일고 발자국이 남았다.

“그래, 그렇다, 하는 말이 듣고 싶어서 심술이냐? 그래, 그때마다 멈추어 서겠다. 어딜 능구렁이처럼 떠보고 있어? 마을이 요즘 어떤지 아닌지 물은 건 네 놈 아니던가?”

“학오께서 공사가 다망하시니 그러지요.”


 
  

 

@wits_so님의 지원입니다


외형


하얀 머리는 물에 들어갈 경우가 잦아, 공연히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나로 틀어올려 묶었다. 거친 손은 무기 대신에 담배나 술병을 잡는 때가 훨씬 많다. 검은 옷은 주변 포목집에서 파는 싸구려로 수수하고 거칠다. 흡사 죄수의 옷 같다. 햇빛에 그을려 온몸이 새까맣게 탔으나 옷 아래 살결은 하얗다. 노란 눈은 태생적으로 오만해 보이지만, 그보다는 게으르고 나른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것은 수양의 결과다.


명 : 홍 함려 洪 菡旅 

자 : 반회 反晦 (주로 홍반회라 불린다.) 

호 : 하몰군 河沒君

 

나이 : 47세

키·몸무게 : 188cm / 79kg 


 

이연문 泥蓮門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 같아라. 도의 길은 형상이나 숭상과 같은 오악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진흙탕에서 뒹구는 민초를 돌보는 것에 있다 하여 백성을 돕는 선행을 중시한다. 남부의 호수에 살던 어부들이 연못 속 물고기를 잡기 위해 원시적인 작살을 다루는 법을 익혔고, 그것이 발달시켜 만든 창술인 차의술扠义術을 주요한 무공으로 삼는다. 초근접전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검을 패용하나 사용하는 일은 드물며, 이를 중점으로 가르치지도 않는다. 역사가 오래된 종문이며 많은 이들이 쉽게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창술’을 연마시키는 덕에 많은 수행 제자들을 배출했다. 요마귀괴를 무찔러 백성을 도우며 이름을 드높여, 고된 수련으로 인한 높은 중도탈락율에도 불구하고 배출한 명제자가 많다


…는 것은 과거의 이야기. 검과 도의 인기에 밀려 몇십 년 전에서부터인가 인기가 시들해지더니, 모종의 사건으로 전전대 문주가 객사한 이후로 존망이 위태로워져 전대 문주가 녹수궁에 몸을 의탁했다. 현 사존인 하몰군은 책임감이 없어 제자들을 방치해, 들어온 지 일 년이 넘은 제자에게도 창 쥐는 법 하나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게다가 수진에 힘쓰는 자라면 무릇 검을 다룰 줄 알아야 하는 법인데도 배울 수 있는 검술이라고는 녹수궁인이라면 모두 배울 수 있는 천뢰검법 뿐. 지금도 산문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이연문 아니면 갈 곳 없을 정도로 재능이 없고 가난한 이들이다. 

 


 

성격

 
나태한 / 능글맞은 / 선량한 

 

유유자적 살아가는 나태한 한량. 직접 만든 초라하고 작은 나룻배 위에 삿갓을 쓰고 누워 물 흘러가는 대로 낮잠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자는 것이 일상이다. 술이나 담배에 취해 이백의 시를 흥얼거리는 목소리를 먼 곳에서도 들을 수 있다. 해가 질 즈음에는 하루종일 펼쳐 두었던 그물을 걷고 작살질을 몇 번 해 물고기를 잡아 와, 그것으로 음식을 해 제자들과 나누어서 먹는다. 아무리 제자들을 반기지 않는다고는 하나 적어도 제 산문에 들어온 이상 굶기지는 않는다는 것이 신조다. 


물론 알량한 책임감은 딱 거기까지로, 그 이상으로 제자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핀잔만 늘어놓는데, 네 아까운 젊음일랑 낭비하지 말고 썩 다른 길을 찾아 떠나라는 식이다. 태평하기 짝이 없어 앞날을 고민하지 않으며, 위기 의식이 부족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허술해 보이는 인상과는 다르게 은근히 고집이 있고 능글맞아, 과거 있던 일이나 제자들을 받지 않는 이유 따위를 물어보면 ‘자네가 생각하는 그 이유가 맞다네’ 하는 식으로 슬쩍 회피해버리기 일쑤다. 한 번 마음이 정한 것은 쉽게 꺾지 않지만, 싸움을 하기 싫어 그 자리에서는 납득한 체 하고 결국 실행에 옮기지 않는 사람이다. 흰소리는 자주 늘어놓지만 제 생각을 주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기쁜 일이 있어도, 나쁜 일이 있어도 속으로 삭이는 경향이 있다. 


근본적으로는 선량한 사람이라 주변의 약한 것을 그냥 두고는 못 본다. 세심한 구석도 있어 제 사람이라고 인식한 것, 특히나 제자들의 작은 변화를 금세 알아차리는 편이다. 물론 그를 표현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알아도 모르는 척 한다. 남과 거리를 두려고 하며, 그것은 제자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남에게 지나친 간섭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강요하지 않는다. 충고하지 않는다. 비판하지 않는다. 무엇 하지 않는다, 않는다, 않는다……. 행동을 자제하는 사람이다. 스스로를 죽이려고 하는 것만 같다. 


 
기타사항 

 

  • 어부의 아들로, 작살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 창술에 재능이 있다고 여긴 전대 문주가 직접 들인 제자다. 전대 문주와 사이가 유독 나빴으며, 그가 사망한 이후로는 제대로 된 수련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 한 마을을 몰살시킨 수적 무리의 발목에 돌을 달아 산 채로 수장시킨 적이 있다. 물에 잠기다(河沒)은 그때의 학살 때문에 비난 섞여 붙여진 호다. 하지만 지금은 창을 제대로 쥔 지 몇 년이 흘렀으니 실력이 그때만 못 할 것이라는 평가가 따른다.

 

  • 현재 궁 안에 있는 연못의 연꽃 태반은 그가 가꾸는 것이다.

 

  • 수진계에 몸 담은 이치고는 싸움이나 충돌을 극도로 피한다. 제자들에게 제일 먼저 가르치는 소리가 강호에서의 명성은 허명이니, 비승할 마음이 진실로 있다면 양보하고 참는 수행을 먼저 하라고 가르친다. 특히나 이연문이 주도하는 유렵은 금한다. 그 외의 수행은? 알 바 아니다. 다른 문파에서 하는 야렵에 참여하고 싶으면 참여하라는 식.

 

  • 제자들에게 “되먹지 않은 수행일랑 그만하고 속세의 즐거움이라도 찾아가라”는 말을 자주 한다. 재능이 없는데도 수진계에 들어오겠다고 기웃거리는 이들을 싫어하지만, 또 재능 있는 자들을 썩 반기는 기색도 아니다. 특히나 재능이 있는 자가 이연문에 들어오겠다고 하면 당장 다른 사문들을 연결시켜 주는데, 그때만큼은 누구보다도 성실하다.

 

  • 제자들에게 열성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라고 해봤자 수영, 물고기 잡는 법이나 이백과 두보의 시 정도. 그래도 제자가 하겠다는 것을 말리지는 않는다. 어디 한 번 해보거라, 하는 식으로 응원한다.

 

  •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강호에서 은원은 확실하니, 은혜는 베풀고 원한은 사지 말 것”이다.

 

  • 은근히 보약이나 약재를 모으고, 의학 서적을 모으는 일에 모든 재력을 소비하고 있다. 가끔은 제자들에게 이상한 약을 권유하기도 한다.
    “머리카락이 금세 길어지는 약이란다. 먹어볼련?”
    “재료가 뭡니까, 사존.” 
    “코끼리 똥.”
    “사존, 오늘 이 제자가 종주 한 번 바꿔보겠습니다.” 

 

  • 제자와 사존 사이의 관계가 유독 편하다. 제자와 만담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너는 사존이 뭐가 예쁘다고 여즉 남아서 이 지랄이냐.”
    “설마 사존이 예뻐서 남았겠습니까?” 

  
  
[이하로는 전체 공개되나, 산문의 제자들만 알 수 있는 정보입니다.]
      

  • 실제 제자들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재능이 없는 자들은 빨리 수진계에서 쫓아내고자 하지만, 재능이 있어 도무지 지나칠 수 없는 몇몇에게는 창술의 기본을 제대로 알려준다. 그러나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면 더 이상의 가르침을 멈춘다. 대부분의 제자들은 이 즈음에 실망해서 다른 종문을 찾기 마련이고, 끈기가 남다르게 우수한 소수만이 남아 조금이라도 더 배우려고 하거나 창술을 홀로 더 수련한다. 하몰은 ‘뛰어난 제자’들에게 사사해봤자 이주일에 한 번 정도 있는 대련을 통해 잘못된 습관을 짚어주는 것 정도 이상의 일을 하지 않는다 

 

  • 재능이 없는 제자에게는 조금도 창술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호신을 핑계 삼아 창을 배우려고 해도 예외 없다.  
    “네게는 이미 모든 무술의 근본인 천뢰검법이 있고, 그것으로 해결하지 못할 적이 나타나면 사존이 다 알아서 무찔러 줄 터인데 어찌 사람 도살하는 법을 배우려고 하느냐?” 

 

  • 그럼에도 제 곁에 오래 남아 있는 몇몇 제자(특히, 이번 수행에 동반한 제자들.)를 매우 아낀다고 한다. 재능 여부와는 상관없이. 
      
      

 

비밀설정

 

  • 그는 참으로 천둥벌거숭이 같은 존재였다. 제 재능만 믿고 날뛰니 적을 쉬이도 샀다. 자비와 용서는 없었다. 전전대 문주가 그를 고아하게 지적해 주었으나 이미 무술 재능으로만 따지면 그를 뛰어넘었던 당시의 반회는 충고를 전혀 듣지 않았다.

 

  • 결론만 이야기하면, 그의 오만 때문에 반회의 사형과 전전대 문주가 죽고 고향 마을이 멸망했다. 반회를 직접 노릴 수 없으니 그의 고향을 멸망시키고자 그에게 당했던 몇몇 악인들이 모였다. 우연히 소식을 접한 반회의 사형은 반회에게 소식을 알리고자 했으나, 반회는 먼 곳으로 야렵을 떠나 소식이 닿지 않았다. 결국 사형은 누구의 도움을 구하는 일을 포기하고 홀로 반회의 고향 마을을 지키다가 죽었고 마을은 멸망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야 돌아온 반회는 전전대 문주의 충고를 무시하고 마을을 점령한 수적을 산 채로 매달아 죽인다. 하지만 반격 때문에 독에 당했고, 전전대 문주는 자신의 모든 금단을 소비하여 반회를 치료했다. 금단을 잃은 전전대 문주는 스스로의 의지로 사문을 떠돌다가 객사했다. 전대 문주는 반회를 용서하지 않았다. 반회도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 자신보다 못났던 사형이 죽은 이유는 약해서다. 재능 없고 약한 이들이 왜 수진계에 들어와 헛되이 싸움으로 자신을 희생한단 말인가? 신선이 되지 않아도, 좋아하는 이와 가정을 꾸리고 함께 사는 것이 진짜 수행이고 삶의 즐거움 아니던가. 재능이 없는 제자를 쫓아보내려는 것은 그러한 이유다. 약하고 어린 자들을 지켜야 한다는 맹목적인 목적 의식이 이 때 생겼다.

 

  • 재능이 있는 자들에게서는 자신의 오만을 겹쳐본다. 이 사달을 지냈음에도 지독하게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라.
    보약과 약재를 모으고 의술을 공부하는 이유는 전전대 문주에게 보은하기 위해서다. 이따금은 복면이나 망사로 얼굴을 가리고 주변 마을에 의술을 베풀기도 한다.

 

  • 물 속에서 건져 올린 시체를 사형과 부모라고 믿고 싶었다. 수적들의 말대로 산 채로 구워서 먹지는 않았으리라.
    창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 되었다는 세간의 소문과는 다르게 매일 밤 손이 터질 정도로 수련한다. 이를 알고 있는 것은 궁주와 사존 중 일부, 가장 측근에 머무르는 제자 정도다.

 



출처: https://interitio.tistory.com/ [NONE]


 

관계

 

[이연]

 

● 양동현
하루 빨리 수진계에서 내보내야 할 것 같은 놈이 어쩌다가 이연문의 대사형까지 이르렀는지 모를 일이다. 그나마 검보다는 창이 경지에 이르기 쉬워, 병사들도 모두 검 대신 창을 쥐니 다른 곳에 적을 두기보다는 제가 데리고 있는 쪽이 목숨 부지에는 편할 것이라. 종종 밤에 불러 네가 대를 이어야 한다며 수련을 시키고는 있으나 성과가 지지부진한지 동현의 창을 바깥으로 내보이지는 않는다. 이놈은 평생 수진계를 떠날 생각이 없으니 그렇다면 가늘고 길게 살 방법을 가르쳐야겠지. 일단은 삼십육계 줄행랑부터 배워라.

● 사유원
거, 나가라, 나가라, 말을 하면서도 사유원이 나가면 이연문이 굴러가지 못할 것을 알아 말에는 진의가 없다. 여기까지 굴러 온 안타까운 것들을 먼저 챙겨서 저쪽으로 가라, 무엇을 해라, 살림꾼 노릇이 톡톡이니 결코 재주 없는 이라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나갈 아이라고 생각해 정을 붙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유달리 실한 물고기를 보거나 좋은 재료를 보면 유원이 생각이 먼저 난다. 결국 창까지 쥐어주기는 했는데, 아이고, 빨리 내보내야 할 애를 어쩌다가 이렇게 아끼게 되었는지 스스로도 이해 못 하겠다 다만 그토록 가게를 크게 하는 이라고 했는데 이연문이 마음에 찰지, 걱정이다.

● 진명영 
남부에서 고아로 지내던 것이 무술에도 자질이 있더라. 평소에는 여상하게 넘겼을 것이나 이상하게 눈에 밟혀 거두어 왔더니 이연문에 또아리를 틀고서는 사존, 사존, 하고 쫓아 다닌다. 성정으로는 저를 미워하거나 답답하다 여길 법도 한데 저만 졸졸 따르는 것이 꼭 순진하고 착한 아이에게 못할 짓을 한 것만 같다. 다른 좋은 사존을 만났다면 경지에 올라도 한참 전에 올랐을 재목이건만 왜 나가래도 나가질 않아. 결국 포기하고 창을 쥐는 법을 가르쳤는데, 웬걸, 서역행까지 따라 나오겠단다. 이걸 어쩌누.

 


 

● 우신현 
어린 것이 강아지 같이 산문 곳곳을 싸돌아 다니길래, 굶지나 말라는 심정으로 강정이나 연밥 따위를 입에 밀어넣어주던 것이 어느새 인연으로 이어졌다. 네놈에게는 청주사문이 딱이라는 소리를 흘러가듯 한 것을 어찌 기억했는지 그쪽 산문에서 수련하더니, 제법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듯 싶다. 이곳에 안 오고 그곳에 가기 다행인 인재지, 창보다는 애초에 다른 것에 더 자질 많아보이기도 했다. 보름달 뜨는 적이면 속앓이하던 모습이 여즉 눈에 선하지만 저가 깊게 관여할 일은 아니라 여겨 가끔 옆에 오면 장포를 덮어 모습을 가려주던 것이 전부. 저에게 오지 않는 날은 다른 이가 아이를 달래줄 것이다. 무탈히 컸으면 좋으련만. 그런데, 언제쯤 솔직하게 굴 것이냐?

● 공명화
가꾼 연꽃을 탐내는 아이가 있었다. 이따금 그 아이가 제 꽃을 꺾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 약간의 욕심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가까이 와 이름을 물어보고, 연꽃을 꺾어주기도 한다. 아이가 제 소문을 알면 태도가 달라질까, 고민했지만 솔직히 상관은 없었다. 그럴 아이가 아니라고도 생각했고. 아이와는 그냥 꽃 이야기나 한다, 요즘 모란이 피었대요, 장미가 한창일 계절이지요, 먼 사막의 선인장에서는 천 년에 한 번 꽃이 핀다는데…….

● 연교교
연못에서 풍류를 즐기고 있노라면 이따금 그것과 눈이 마주칠 때가 있다. 처음에는 산짐승인 줄 알았는데, 계속 보아하니 사람의 아이더라.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자니 저도 와서 대에 줄을 매어단 것을 던지길래, 작은 낚시대 하나 만들어주고 이따금 쓰게 했더니 어느 순간 낚시를 즐기더라. 그 참에 회 뜨는 법이나 탕 끓이는 법도 엉겁결에 보여줘버렸다. 눈썰미가 좋은지 한 두 번 보여주니 금세 따라오는 것이 영민하고, 또 눈에 욕심이 자글거리는 것이 일을 쳐도 칠 상이건만 결국 녹수궁인이 되었으니 혹시 젊은 치기에 도를 넘어 원한이라도 살까 걱정스럽다. 저가 그랬던 것처럼. 허나 밑의 아이가 아니라 다른 종주의 아이니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 필요 이상의 관심은 두지 않으렷다. 그나저나, 저 자그맣고 귀엽던 것이 언제 이리 징그럽게 컸는지 하늘이  통탄할 노릇이다.

 

● 채기헌
내가 오른손을 들면, 그는 왼손을 든다. 비록 무술이 다르기는 하나 채기헌과 홍반회는 쏙 닮아 있었다. 방만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이 남들이 보기에는 영락 없는 한량의 꼴이라던가 하는 면이 그렇다. 십 대 때부터 서로 교류했으니 마음이 통하는 것은 당연하다. '형'이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아, 남들이 보는 자리에서도 채 종주, 라는 그럴듯한 호칭 대신 헌이 형, 이라는 십 대 때나 부르던 말이 무심코 튀어나온다. 전대 종주를 홍반회가 죽였다는 얼토당토 않는 소문이 정말로 소문으로만 그치고 가라앉을 수 있었던 까닭은, 기헌의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도움이 있었다. 그러나 서로 삶이 바쁘니 정작 두 사람에게 중요한 일이 일어날 때에는 잠시 떨어져 있다. 그 간의 사정은 어림짐작만 할 뿐, 구태여 상처를 파내고 싶지 않아 깊게 물어보지 않고 있다. 가끔 술잔이나 같이 기울이는 것에 족하다.

● 모주승
녹수궁이 비록 사람을 까다롭게 고르지는 않는다고 하나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은 또 아니렷다. 모주승과 사문 간의 연이 있어, 녹수궁에 들어오기 전에도 홍반회는 종종 모주승을 누이라고 칭할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어렸을 적에 검을 나누었을 때 패한 이후로 내내 어렵고 무섭기만 한 누이였으나, 동시에 믿음직하기도 하다. 전전대 종주가 죽고 가뜩 어렵고 시들어가던 문파의 일이 확연히 어려워지자 전대 종주는 부끄러움도 없이 모 종주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랬다. 전대 종주의 정중한 편지를 들고 모주승의 앞에 고개를 조아린 자가 바로 하몰군이었다. 평시 누이, 라고 능글맞게 부르던 것과는 다르게 형혹대군 모주승 종주를 뵈오, 라는 첫 문장에서부터 모 종주는 이연문의 사정을 꿰뚫었을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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