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에는 차가운 기색이 서려 있었다. 제때 개사초(改莎草: 무덤의 떼를 갈아 입히다)하지 않아 무성하게 자란 들풀이 떨어지는 태양이 버거운 양 잎사귀를 늘어뜨렸다. 그러다가 별안간, 큼직하게 흔들렸다. 무덤 사이에서 새가 튀어 올랐다. 작은 강아지만치 커다란 까마귀였다. 까마귀는 그대로 마을로 허겁지겁 날아들었다. 그러고는 어느 집 마당에 주저앉는다.

마당에서 콩을 까고 있던 눈 밑이 퀭한 여자 하나가 마귀에게 돌팔매질했다. 이를 악다물고 말하는 목소리가 살벌했다.

“저놈의 까마귀.”

어린아이 주먹만 한 돌에 얻어맞을 뻔한 것에 놀랄 만한 데도 까마귀는 미동도 없이 시선을 여자가 품에 끌어안은 소쿠리에게 고정했다. 까악. 까마귀가 부리를 열어 길게 울음했다. 여자가 소쿠리를 더욱 깊숙이 끌어안았다. 소쿠리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는 낡은 헝겊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까악. 까마귀가 재차 울었다. 안색이 파리하게 질린 여자가 소쿠리를 품에 부둥키고 서둘러 집안으로 몸을 피했다. 까마귀가 부리를 또 열려다가 말고 솟구치듯 날아올랐다. 뒤에서 삿갓을 깊이 눌러 쓴 괴한 둘이 나타난 까닭이었다. 그들이 눌러쓴 삿갓 아래로 천이 나부꼈다.

집안의 그늘에 숨어 여자는 희번득거리는 눈으로 남자들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육척의 장신들이었다. 허리춤으로 찬 검과 등에 진 괴나리봇짐 외에는 짐이 단출했다. 하나는 삿갓 아래 늘어뜨린 천마저 새까맸고, 다른 하나는 햇빛에 반사된 모습에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얗다. 손은 천으로 동여맸고 긴 옷은 발목까지 덮으니 겉으로 노출되는 피부는 조금도 없었다. 자칫 음침할 수 있는 차림이나 자세는 곧고 어깨가 반듯하니 분명 검을 정식으로 배운 무인들, 그것도 신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보아하니 영검을 불러오고 축귀를 일삼는 천군들이다.

작금에 와서 천군이란 크게 두 부류였다. 하나는 백성을 도와 곳곳에 출몰하는 요마귀괴를 무찌르는 자들이요, 다른 하나는 요마귀괴보다 악독하게 백성을 핍박하는 자들이었다. 일단 두 부류로 분류를 하긴 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두 부류가 같은 존재일 때가 잦았다. 골칫덩어리를 해결해줄 테니 천만금을 내놓으라고 떵떵거리거나, 제 무위를 믿고 일반 민초의 목숨을 쉽게 앗아가는 이들이었다. 

어쩐지 볼 때마다 등골이 서느런 것이 필시 검에 피를 묻힌 적이 있는 살인자들이로구나. 그것이 여자의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도처에 까마귀가 있는 세상이 아니던가. 저들이 지금은 온화하게 걷고 있다곤 하나 언제 돌변하여 제 목을 치려고 덤빌지 모른다. 여자는 집 안의 그늘로 더욱 몸을 웅크렸다.

“실례합니다.”

그런 생각에 골몰하여 하도 긴장한 나머지 장정 중 하나가 그리 창문을 넘어 말을 걸어왔을 때, 여자는 깜짝 놀라 소쿠리를 되레 던져 버릴 뻔했다. 하얀 옷을 입은 사내였다. 목소리가 청아했다. 남자의 차림에서 개인을 식별해 낼 수 있는 것은 그 정도뿐이다, 목소리.

“무슨 일이십니까.”

“이 근처에 묵을 만한 객잔이 있습니까.”

여자는 남자들이 썩 꺼지기를 바라며 검지로 마을 서편을 가리켰다. 삿갓을 고쳐 쓴 백삼의 사내가 고개를 꾸벅여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러나 바로 걸음을 옮기지 않고 제자리에서 꾸물거렸다. 헛기침 두 어 번 하더니 익숙하지 않은 듯 어색한 말투로 물음을 던졌다.

“……이 마을은 요즘 어떻습니까.”

“어떻다니요?”

무슨 물음인 줄 뻔히 알면서도 여자가 짐짓 딴청을 피웠다. 어떻기는 뭐, 박복한 삶이다. 비옥하지도 않은 지력을 잡초만 빨아먹는 곳. 농사를 열심히 지어봤자 벼에는 물리는 세금이 어마어마하니 차라리 산에서 산나물을 캐어다가 먹는 것이 나은 처지였다. 그러나 남자들이 조정에서 출두한 암행어사일 리가 없다. 여자는 사또와 향리에 대한 불만을 서둘러 입에 올리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남자들의 물음에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을 작정이다. 이러다 곤란한 일에 휩쓸릴 수 있으므로.

“기이한 일이 일어나거나, 요마귀괴가 나타나거나 하지는 않습니까?”

“그런 일은 없습니다.”

여자는 몸을 사선으로 비스듬히 돌렸다. 그때,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창 안으로 손을 넣어 여자의 어깨를 세게 낚아챘다. 그 무례함과 아귀힘에 여자는 몸을 반사적으로 내떨었다.

“아이 이름은 지어주었나?”

여자는 퀭한 눈을 두 어 번 끔뻑거린다. 그러면서도 여자는 흰옷의 사내와 검은 옷의 사내가 서로 옷을 바꿔 입어도 저 독특한 목소리 때문에 금방 구분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검은 옷 사내의 목소리는 아주 기괴해서, 낮았으나 손톱으로 쇠를 긁는 듯 날카롭고 삐죽한 구석이 있었다. 듣기 싫게 긁는 목소리였다. 일전에 목이라도 크게 다친 것일까, 여자는 문득 남자의 목을 뚫는 세검을 상상했다.

“아이 이름은 지어주었느냐고.”

“아직……. 삼칠일이 안 지나서…….”

“서둘러 지어라.”

당신이 무엇인데 간섭이오? 성격대로 쏘아붙이는 대신에 여자는 그러마, 하고 고개를 조아렸다. 무어라 더 말을 붙일 것 같았던 남자는 혀만 차고 여자가 가리켰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남자들이 떠나자마자 그 자리에 다시 까마귀가 온다. 이번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까악, 길게 우는 소리는 자연스러운 새 울음소리라기보다는 독에 오른 선전포고와 더 닮았다. 여자는 소쿠리를 놓지 않고 재차 이놈의 까마귀, 욕설하며 돌 던졌다.



“소쿠리에 있는 것, 여자의 아기였다.” 

학오虐烏는 조금 여자의 집이 멀어지자마자 백의의 남자, 무명無名에게 그리 읊었다. 무명은 대꾸하지 않았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굳은살이 울퉁불퉁하고 마디가 붉은 손가락이 금을 탄주하듯이 검집을 건드렸다. 학오가 그 장단을 잠시간 듣고 있다가 조급하게 입을 뗐다.

“서둘러 이름을 지어주지 않으면…….”

“무언가 태어나겠지요. 어미의 한이 보통이 아닌 듯했습니다.”

“이곳에는 역병이나 전쟁의 냄새가 없다. 분명히 사연이 있어.”

“학오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어린아이들은 쉽게도 죽습니다. 까마귀들이 부를 이름이 없어도 죽습니다. 인간들이 삼칠일을 지키는 까닭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의 형상을 한 괴이가 많은 것이다.”

학오는 설명이라기보다는 뇌까리고 탄식하는 듯한 어조였다. 무명은 삿갓을 고쳐 쓰며 고개를 돌렸다. 마치 천을 뚫고 그 너머를 보는 듯한 태도다. 바람이 불자 삿갓 아래로 붉은 입술만 슬며시 드러났다. 사내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요염하게 붉었다.

“그래서 지체하실 겁니까? 강림께서는 하루빨리 이 물건을 가져다 주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만은…….”

무명이 메고 있는 봇짐을 슬쩍 가리켰다. 강림, 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학오가 신음을 안으로 삼켰다. 그가 손으로 삿갓 밑으로 늘어진 천을 헤집으며 짐짓 딴청을 피웠다.

“사흘을 쉬지 않고 서쪽으로 달려왔다. 쉬어가는 김에 우환 하나를 해결하고 가도 좋지 않겠느냐.”

“앞으로 이런 마을을 수십, 수백은 맞닥뜨리게 될 겁니다. 그때마다 멈추어 서시게요?”

학오가 발을 세게 굴렀다. 땅에서 먼지가 풀썩 일고 발자국이 남았다.

“그래, 그렇다, 하는 말이 듣고 싶어서 심술이냐? 그래, 그때마다 멈추어 서겠다. 어딜 능구렁이처럼 떠보고 있어? 마을이 요즘 어떤지 아닌지 물은 건 네 놈 아니던가?”

“학오께서 공사가 다망하시니 그러지요.”